자정. 오늘과 내일 사이의 경계에서, 방 안의 스탠드 하나가 고요하게 빛난다.
어두운 듯 어둡지 않은 이 방은 어쩌면 나와 많이 닮았다.
몸은 "잠을 자야 내일 하루를 버틸 수 있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머리는 "그래도 뭔가는 써야지"라며 나를 책상 앞으로 끌어당긴다.
"영화감독은 영화를 찍어야 감독이다." 어느 감독의 이 말처럼,
작가 역시 글을 써야만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가일지라도,
적어도 나는 내가 글을 쓰고 있음을 안다. 그래서 오늘이라는 하루의 끝자락에, 나는 또 책상 앞에 앉는다.
최근 토니 타키타니 란 영화를 보았다. 고독의 의인화 같은 주인공 토니 타키타니의
숨죽인 울음소리에 나도 같이 울었다. 고독에 몸부림치는 텅 빈 방 안에 누운 그의 위로
이제 고인이 된 류이치 사카모토의 Solitude 가 내려앉았다.
삶이라는 주제 앞에서
요즘 나는 ‘삶’을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있다.
삶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늘 나를 자극하고 따라다니는, 가장 두렵고도 복잡한 주제다.
때로는 삶이라는 이 날것의 주제가 마치 나를 놀래키려 준비하는 것만 같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그 고민 속에서 한밤중 문득 떠오른 주제가 있었다.
바로 ‘구겨진 종이’. 책상 옆 쓰레기통에 구겨져 던져진 종이들이 쌓여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것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작가는 늘 자신의 삶을 무언가에 투영하기 마련이다.
아마도 글감이 필요해서였겠지만, 나는 그 구겨진 종이를 나로 여겨 시를 썼다.
구겨진 마음, 그리고 나의 솔직함
내 삶을 하얀 종이라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가 그 위에 쓰는 글씨는 삐뚤빼뚤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씨를 보면, 구겨버리고 싶어진다.
구겨버리고 싶다, 아니 괜찮다.
다시 구겨버리고 싶다, 아니 정말 괜찮다.
나는 매일 스스로를 괜찮다고 다독이며 구겨진 마음을 펴보려 한다.
하지만 결국 다시 구겨지고 던져지는 마음. 요즘 내 상태가 딱 이렇다.
인생의 프롤로그에서
프롤로그란, 이야기의 서두를 설명하기 위해 쓰는 짧은 글이다.
내 나이를 평균 수명에 비유한다면, 아마 나는 이제 겨우 인생의 프롤로그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미 성에 차지 않는다면, 과연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구겨진 종이를 적시는 밤
이런 밤은 종종 찾아온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경계가 희미한 밤, 웃음과 울음이 뒤섞이는 밤,
눈물과 술이 같은 맛을 내는 밤. 그러한 밤들은 결국 내 안의 하얀 종이를 적시며, 또 한 페이지를 만들어간다.
삶은 구겨지고, 다시 펴지고, 또 구겨지기를 반복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이해하게 된다.
구겨진 종이처럼 부족한 나를,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를. 그리고 내일 또 한 장의 종이를 펴서 글을 써내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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