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초기 알츠하이머를 앓는 사람입니다. 전 매일 잃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줄리안 무어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스틸 앨리스>는 기억을 잃어가며 점차 자신을 잃는 과정을 담담히 그리면서도, 삶을 끝까지 지키고자 싸우는 한 여성의 모습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한 인간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내 삶을 이루는 조각들이 떠나가는 순간
한 번 상상해보자. 우리가 소중히 여겨온 기억들이 하나씩 사라져가며, 나 자신이라 믿었던 모든 것이 점점 백지로 변해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대학에서 인정받는 언어학 교수이자 사랑받는 아내, 어머니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믿었던 '앨리스'(줄리안 무어 분)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며 이런 변화를 하나씩 마주한다.
그녀는 강의 중 갑작스럽게 단어를 잊거나, 늘 다니던 대학 캠퍼스에서 길을 잃는 등 일상적인 순간 속에서 병의 조짐을 느끼게 된다. 결국 가족 앞에서 “초기 알츠하이머”임을 고백하며, 자신이 겪는 두려움과 고통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잃어가는 것들 속에서 싸우는 사람
"내 두뇌가 죽어가고 있단 말이야. 평생 쌓아온 모든 것들이 떠나가고 있어."
앨리스에게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언어학자로서 지적인 성취를 이뤄왔던 그녀가 단어를 잃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기억의 상실을 넘어, 스
스로의 존재를 잃어가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앨리스는 병에 무너지지 않고 싸움을 선택한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병이 자신의 모든 것을 잠식해가더라도, 그녀는 삶의 한 페이지라도 더 지키기 위해 애쓴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가족, 특히 막내딸 리디아(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와의 대화를 통해 병을 받아들이는 법과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워간다.
병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
<스틸 앨리스>는 단순히 병의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병에 대한 앨리스의 연설 장면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는 우스꽝스럽고 웃기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병이지요.
저는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하고 싶은 일들이 많습니다."
앨리스는 병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두지 않는다. 자신을 "병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은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녀의 태도는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나는 여전히 앨리스입니다"
영화의 제목 <스틸 앨리스>는 이 작품이 단순히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병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지키려는 앨리스의 싸움을 강조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녀는 점차 기억을 잃어가지만, 현재라는 시간에 집중하며 자신이 누군지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영화는 그녀가 단어 맞추기 게임을 하며 기억력을 유지하려 노력하거나, 병이 더 심해졌을 때를 대비해 스스로에게 남긴 영상을 통해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을 차분히 보여준다.
줄리안 무어의 강렬한 연기와 제작진의 헌신
줄리안 무어는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들과의 교감을 통해 앨리스의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녀의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연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또한 이 영화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던
리처드 글렛저 감독이 투병 중 완성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그의 헌신은 영화의 진정성을 더했다.
삶을 지키기 위한 싸움
<스틸 앨리스>는 단순히 한 여성이 병과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상실에 대해, 그리고 그 상실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앨리스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현재를 통해 지켜진다.
"삶의 페이지가 하나씩 뜯겨나갈 때, 우리는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그것을 붙잡아야 한다."
이 영화는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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